어떤 부분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제가 가지고 있는 키배에 대한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글을 시작합니다.
전 애초에 논쟁, 혹은 키배로 불리는 행위를 통해 남을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가치관은 그 누군가가ㅡ사랑방의 경우엔 적어도 20년 가량을 살아온 경험과 사고의 누적일 것이고,
그러한 모든 경험을 넘어설 지적인 혹은 감정적인 충격을 누군가에게 가할 수 있다는 자신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건 제가 살아온 인생의 수심이 다른 이를 바꾸어 놓을 수 없을만큼 깊지 못하며,
제가 보일 수 있는 언설의 수준이라는 것이 한심함을 아는 탓입니다.
다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에서 파생된 동일 사건을 향한 서로 다른 해석들이 맞부딪히면서
각자의 논리 구조를 체계화하고 사고방식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 해줄 수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생각합니다.
비록 서로가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결국엔 답도 훈훈한 화해도 불러오지 못한 채 종결된다 하더라도
각자의 승리를 위해 이 악물고 상대를 물어뜯으려 하는 것만으로도 전진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전진은 키배에 참여하는 개인이 더욱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논리 체계의 부당한 부분을 메꾸며
더러는 포기해가면서 '설득력 있는' 주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봅니다.
이는 반대로 이야기하면 비논리적이거나 합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논제와 벗어난 인신공격이나 레토릭 따위에 매달리는 것을 경계한다는 말 또한 될 것입니다.
결국에 서로를 설득하거나 상대의 가치틀을 바꿔놓을 수 없다면 그 지향점을 낮추는 것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믿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저러한 일련의 사고와 더불어 제 자신의 가벼움은 저를 쉽게 키배질에 탐닉하게 합니다.
그 가벼움에는 단순한 손놀림으로 아드레날린 따위의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다른 이들이 나와 같지 않다는 점에 대한 불안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가벼움과 충동이 자제에 대한 욕구를 쉬이 넘어서고는 합니다.
솔직히 말하여 전 제가 재단을 감싸는 모양새가 되었다는 게 참 아이러니컬하다 가끔 생각합니다.
전 대학의 평준화가 사회 인식 구조 변화와 더불어 이 사회의 악순환을 정지시킬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거기엔 대학들의 전체적인 공립화 혹은 국립화가 어느정도 밑받침되어야 한다 봅니다.
실질적으로 학교 운영에 유입되는 재단의 돈이라는 것이 우리 학교 뿐만 아니라 많은 학교에서 미미한 수준이라 보는 탓에 더욱더 그러합니다.
이런 논리 체계는 사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고 또한 제 아집에서 발생한 궤변론일지 모릅니다.
다만 재단에 대한 비판 자체를 '자식의 아버지에 대한 도전' 따위로 치환하는 것에 반대함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비유에 사용된 상황 또한 문제가 있다 보지 않습니다)
허나 거기에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논의에 참여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열람할 수 있어 그 신뢰 정도를 판단할 수 있거나
혹은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루트를 통해 공급되는 논거일 것입니다.
또한 해당 정보의 가공에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치들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한 부분들에서 재단에 대한 비판들이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였고 때문에 딴지를 걸어왔습니다.
전 생명과학과 전공에 심리학을 복수 전공 예정 중인 입장이고,
이번 사안에서 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영학적 부분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함을 인정합니다.
저로서는 열심히 여기저기 뒤지고 지인들에게 물어가며 논의를 진행시킨다 생각했을지 모르나
해당 분야를 전공으로 하시거나 저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신 분들이 보시기에 한심해 보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생각합니다.
때문에 제가 문제로 생각한 부분이 실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대단히 위험한 부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논쟁이나 논의 혹은 키배를 할 때에 문외한만큼 좋은 상대는 없을 겁니다.
잘 모르는 이의 논리는 어설픈 부분이 많기 마련이고 그러한 허점은 논리 구조 전체를 쉬이 무너뜨리는 작용으로 연결되곤 합니다.
저는 제 논리 체계가 허술하거나 그 기초가 되는 논거가 부실할 때에 그에 대한 합당한 파괴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건 제게 부서진 잔해에서 다시 기초를 세워올릴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할 뿐만 아니라
저라는 허수아비가 아닌 진짜 상대ㅡ이번 경우에는 재단에게 겨눌 날을 다시 한 번 닦는 일 또한 될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그런 예행 과정에서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기존 논리들의 내면들의 정당함과 논리성이 비판 자체의 설득력을 높이고,
그러한 정당한 비판의 논리가 더 많은 참여자를 불러들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제가 '딴지'를 걸면서 기대한 것은 그것이었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 요 몇주 간에 이루어진 커뮤니케이션들은 그러한 기대와는 조금 다른 것들이었다 말하는 게 적당할 듯 합니다.
제가 부당하다고 느낀ㅡ실제로 그러한지는 차치하고라도ㅡ 부분들을 여기에 줄줄히 늘어놓는 건은
글을 싸구려 신파극보다 못한 것으로 만들까 하여 저어합니다.
또한 여기에서 그렇게 다시 논쟁의 씨앗을 싹 틔우는 일이 어떠한 전진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탓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판단은 제 속단일 수도 있고 오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설사 제가 기대하지 않았던 진보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사과드림으로써 어설프게나마 무마하려 합니다.
간략하게 줄이려던 잡설이 너무 길어진 감이 있습니다만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거의 다 마친 듯 합니다.
전 위에서 말한 요 몇주 간의 언행에 미숙한 점이 없을 것이라 보지는 않습니다만
그에 대한 책임ㅡ비판을 감수할 준비 또한 늘 되어 있다 생각하며 생활해 왔습니다.
허나 어제 제가 쏟아냈던 정말 허섭하고 무의미한 문자의 나열들에 대해 스스로 절망하였습니다.
자행한 논리와 논거의 대결에서 벗어난 짓거리는 제가 지금까지 토해냈던 것들의 정당성을 보증하지 못했고
제가 애초에 목표하였던 것들과도 동떨어져 있습니다.
또한 스스로 자위하였던 결과들이 실은 의미없었던 것인가 하는 좌절 또한 안겨주었습니다.
때문에 전 제가 지금까지 참여하였던 논의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저열한 감정 싸움과 인신 공격으로 내려간 말의 오고감은 아무것도 낳지 못할 것이고
그것을 다시 지표 위로 끌어올릴 자신이 제겐 없습니다.
재단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가 부디 생산적이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그리하여 옳은 결실 맺길 바란다는 글줄을 마지막으로 다시 토하며 줄이고자 합니다.
2009.11.2
'젊은이들이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이 대체 어떻게 되겠나.'
ㅡ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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