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Michael, Luca Giordano, 1663당신을 위해 써내려간 이 글을 바로 당신이 읽어주기를.
모니터 마주한 당신이, 그냥 그렇게, 허무히 지나쳐 버리지 않기를.
악마의 뿔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오래 전 땅 위를 걷던 동물들은 죽고 스러져 묻혔다. 살은 썩고 추깃물은 질질 흘렀을 터
이다. 그러나 뼈는 남았고, 그 기묘하고 신묘해 보이는 것을 파낸 이들은 갖가지 이름으로
ㅡ산골이니, 용의 뼈니, 악마의 뿔이니ㅡ 멋대로들 불렀다. 그리고는 팔팔 끓는 솥에 넣어
고아 마셨다. 적어도 그네들은 만병통치를 믿었다. 가장 최근에 묻힌 악마를, 다른 말로는
운동권이라 한다.
화석과 악마의 뿔의 차이를 생각한다. 같은 시절의 같은 대지를 걷고, 세찬 운석 비 또한
같이 얻어맞았건만 외로이 악마가 되어버린 서글픈 뼈들을 생각한다. 도마뱀의 정강이뼈
를 들고 악마의 실존을 외치는 문드러진 신의 시종들을 떠올린다. 그 앞에서 입 헤 벌린
군중 또한 바라본다. 그 꼴을 내려다 볼 신의 표정을 상상한다.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젠 악마가 되어버린 늙은 짐승 몇을 만났었다. 보수로 불려야 마땅할 것이나 뒤틀린
이념의 지도가 좌파로 만들어 버린 대기자大記者를, 직접 뵌 일은 없으나 그 이름을 알고
또한 그 딸인 그녀를 안다. 이십 대를 통째로 가져다 바치고, 이제는 무기력해져 쁘띠부르
주아의 삶을 영위해 나갈 뿐인 모습을 가끔 본다. 그 이는 언젠가 내게 거대 담론을 경계
하라 충고했었다. 사고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 무게에 짓눌려 수십 년을 허덕이는
이들이, 그녀 주변엔 너무나 많았다. 같은 깃발 아래서 어깨동무한 채 노래 부른 그네들과
만나는 술자리에서, 늘 계산하는 이가 그녀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 또한 그녀의 남편
이 벌어온 것일 뿐이다.
또다른 그녀는 아직도 그 즈음 생긴 상처를 부여잡고 끙끙댔다. 일주일을 같이 먹고 자
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집단 상담의 장 막바지에서야,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상처
의 연유를 알려주며 악마임을 고백했다. 1년 남짓한 교도소의 기억은, 그녀 말곤 먹여 살
린 이가 마땅치 않았던 피붙이들의 괴로웠던 시절은, 서른 해가 다 지나도록 속에서 살아
남아 스스로 날을 갈고 때때로 가지 쳐 심장을 찢는다 했다. 그녀는 수감의 치욕에 괴로워
했고, 같은 구호를 외쳤던 그녀의 남편은 홀로 밖에서 편안했단 죄책감에 박제당해 있었
다. 마치 빠리의 택시 운전사처럼.
메피스토펠레스는 학원에서 영문법 가르치며 가끔씩 먼 산 보듯 황천의 하늘을 말했고,
벨제브브는 천재 소리 듣던 지난 날을 묻고 논술 과외로 통찰을 팔아 풀칠하며 하루하루
괴로운 생을 허비했다. 다만 몇몇 루시퍼만이 빛나는 옛 이름을 되찾고, 시퍼런 광채를 온
몸에 휘감은 채 구름 위를 걸었다. 신의 권능을 손에 넣은 타락한 악마를 보며, 사람들은
모든 악마를 싸잡아 욕했다. 드높이 포효하며 목 놓아 변혁을 부르고 신에게 대적했던 모
든 것이 결국은 그런 것이었냐고 힐난했다. 강사 자리 전전하는 바알은 자신의 무기력에
서 허우적대기도 힘겹다.
한때 그네들의 대열에 끼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지긋지긋한 12년간의 수감이 끝나고
수능이라는 성인식만 지나친다면, 그 너머엔 아직도 살아 숨 쉬는 지옥도와 누런 유황불
속을 산양 뿔 단 채 여유로이 거니는 바포메트가 남아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난 모양이었다. 단테의 지옥엔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이 솟아났고 산酸의
바다는 이제 잉어 두엇 헤엄칠 연못만큼도 못되었다. 그 빌딩의 숲엔, 악마는 없고 악마로
불리는 웨어울프만 몇 있었다. 사람들은 그네들의 어설픈 손톱과 암갈색 갈기를 참지 못
했다. 앞장선 사제가 한 손에 악마의 뿔을 들고 한 손엔 십자기를 높이 치켜들면, 웨어울
프는 참으로 쉽게 악마의 거죽을 뒤집어썼다. 무수한 은탄 앞에서 그네들은 애처로웠다.
다시금 악마들을 생각한다. 현세의 신에게 대들고 싸우고 숨어 지내며 죽임 당하던ㅡ어
둡고 길고긴 터널 같던 백악기를 떠올리고, 지표면을 찢어발기던 운석의 비와 빙하기를
바라보며 그 끝에 비로소 얻은 해방의 순간을 상상한다. 남산에서 고문 당해 결국 바다에
서 떠오른 그 이의 시신은 포르말린에 절여져 자연사 박물관에 다다랐고, 문수니 재오니
민석 같은 명패 든 루시퍼들은 수탉의 날개를 제 등에 찢어 붙이고 날아올랐다. 이윽고 살
아남은 짐승들은 땅에 묻혀 악마로 둔갑했다. 그렇게 땅에 발붙인 수없는 소악마들은 지
상에서 린치 당한다.
묻는다. 당신은 땅을 걷는 악마의 눈을 들여다 본 적 있는가. 그 등의 검은 비늘이 신의
벼락에 맞아 으스러진 조각들을, 그 사이 얼핏 스치는 잿빛으로 그슬린 살결을 본 적 있는
가. 그네들의 육편으로 포장되고 혈액으로 마감된 당신 발밑의 아스팔트 도로를 유심히
내려다 본 기억 있는가.
토끼와 사냥개를 같은 가마솥에서 삶으며, 이제는 스스로 갈기와 발톱과 이빨을 덧붙인
이들에게조차 악마의 거죽을 입히고 그 이마에 악마의 뿔을 박아 넣으려 하는가.
내게 악마의 세례를 내려줄 솔로몬의 마신도 짐승의 피를 물려줄 늑대도 없는 이 우스꽝
스러운 세상에, 목공풀 냄새나는 웨어울프만이 불가를 몇 서성인다. 그렇게 악마의 뿔을
여기 바친다. 뿔 가지고 상상한 악마의 실루엣이 유령처럼 배회하는 콘크리트 연옥에 바
친다.
2009년 11월 19일.
스탠드 얼론을 자처하며 애써 수음하는 자가 쓰다.
추잡한 비유로 점철된, 지독하게 어설픈 이 더러운 글이 모든 당신에게 닿기를.
사랑하는 당신이 끝내 외면치 않고, 차라리 거친 욕설이라도 내뱉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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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게시판에서 싫은 이를 그저 운동권으로 매도하는 게 거슬려서 썼는데
그냥 한 두 곳 올리고 말긴 아까워서 말입니다.
나란 남자 알뜰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