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rre-Auguste Renoir, Self-Portrait. 1910. 18" x 15".작년 4월이었던가, 아니면 5월이었던가.
무료한 수업 중 갑자기 그녀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변덕이 어떤 이유였는지, 어떤 기분이었는지 나는 정확한 무엇을 떠올릴 수 없다. 기억은 끊임없이 일그러지고, 재생산되고, 왜곡되는 탓이며, 더 강한 자극과 기억에 덮히는 경우 또한 많은 탓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그보다 더 전이거나 다르지 않은 건 내 처신이 서투르다는 것이다.
급작스런 상기는 점심께 시작하여 내 애는 갑자기 꼬이고 타기 시작하며, 참지 못한 어리석음은 오후 수업에 들어앉은 내 손가락이 휴대전화 자판을 두들겨 어설픈 문자를 작성케 하였다. 그 때에도 그게 멍청한 짓임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다. 다만 지푸라기를 잡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정정한다.
기억나지 않았던 변덕의 이유가 떠올랐다. 이따금 기록이란 행위는 죽어가던 기억을 불러일으켜 세운다. 어쩌면 방금 내 대뇌 피질의 어떤 세포 하나가 짜깁기를 완료했을 뿐인지도 모르나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미 모든 상황은 종결되었고 사소한 부분이 어찌되었던 정해져 버린 결과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꿈을 꿨다. 극장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표를 구하지 못해 잠시 곤란했지만 문제는 금세 해결책을 보여주었고, 돌아오는 차편 안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녀가 웃었다.
그 웃는 얼굴을 생각하며 보낸 문자엔 답장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보낼 용기는 없었다. 전화번호부의 그 번호를 지울 생각도 없었다. 지푸라기를 잡고 싶었다. 이틀 정도 괴로웠다.
지금 나는 완도를 떠나 광주로 향하는 버스에서 이 글을 쓴다. 옆에는 가방이 있었으나 지금은 땀 냄새가 조금 역한 이가 앉아있다. 에어컨을 청하는 그의 말에 에어컨 바람을 그에게 향하게 한다. 광주에서는 진주로 가는 차를 잡아탈 것이다. 창 밖을 스쳐가는 허름한 마을과 나무, 논을 본다. 아직 토해낼 것들이 남아있다. 게워내자. 그래야 한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그녀를 떠올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나름으로 절박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생각나는 건 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고3, 한창 시인을 흉내내던 그 때의 어느 순간 써갈겼던 쓰레기더미의 한 구석에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목소리를 듣지 못한지 3년 째 되는 해의 것이다. 비웃음을 사 마땅한 물건이었지만 내겐 소중했다.
다른 하나의 기억은 너무나 무책임하게 고백을 받아들이고, 상처 입히고, 밀어냈던 때의 기억에 이어져있다. 내게 미와 매력의 기준은 그녀였다. 지금도 그렇다. 때문에 나는 다른 이를 밀어냈다.
버스는 나주에 들어섰다. 난데없이 이 웃기지도 않는 글을 끄적이는 이유를 반추한다. Q.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요. A. 배설행위. 정답은 언제나 단순한 법이다.
단순한 답이 나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글을 쓰는 건 버스에서 내린 지 일주일이 다 되가는 때다. 공책에 연필심을 가져다 대는 대신 타자를 내리치는 내 앞에는 책이 한권 놓여 있다. 알랭드보통이다. 나는 6개월 전까지 그를 몰랐다. 지금도 그리 잘 안다고는 할 수 없다. 만나보기는커녕 그가 쓴 책 한권조차 완전히 읽은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 책을 사지 않았다. 그녀의 공간에 그 이름이 있었을 따름이다.
내가 이주일 정도 동안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곰씹고, 고대하던 일은 작년 7월에 있었다. 나와 그녀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는 1년 간. 일주일에 6일, 한 달에 24일 가량을. 그리고 하루에 8시간 정도를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다는 점뿐이다.
어리석은 과거의 나는,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녀에게 말조차 제대로 걸지 못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같은 옷을, 규격화되고 디자인 또한 일괄적인 옷을 입은 무리 중에서 어째서 그녀만이 저토록 화사하게 웃을 수 있는가. 그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지금 와서 기억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수련회에 갔을 때 그녀가 입었던 옷의 색깔. 자주 쓰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울렸던 안경. 뒤로 모아 묶은 머리. 일부러 과장되게 웃는 모습. 좋아하던 연예인과 좋아하던 드라마. 머저리 같은 내가 그 드라마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장면.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녀석과 같이 방송반을 했었던 그녀. 그리고 조회 시간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녀석을 바라보던 때의 감정. 옆에 앉았던 때의 두근거림. 온갖 어리석음과 망설임.
졸업식 날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몇 년 뒤에 동창회에서 만나면 이렇게 말하자. 그때 좋아했던 적이 있다고.
아직도 좋아한다. 문제라면 그 정도뿐이다.
작년의 나는 5년 전 나보다 조금 더 명확히 기억난다. 나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연애 따윈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돈을 모으고,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고, 돈을 모으고, 피규어를 사들이고, 돈을 모으고, 만화책과 DVD를 모았다. 나는 7월 동창회에 그녀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답장이 오기 전까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기적은 그리 길진 않았다. 환희의 강도는 충분했지만 기간은 턱없이 짧았다. 5시간 정도 그녀를 곁눈질 할 수 있었다.
5년 전의 그날들처럼.
나는 다음날 문자를 했다. 새벽의 급작스러운 맥박수와 혈압 이상으로 병원에 실려갔던 터라 화제가 있었다. 전날의 모임이라는 공통화제도 있었다. 나는 대화를 잘 이어가지 못했다. 그 뒤로 문자를 주고받을 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공간, 그 주소를 알 수 있었다. 접속했고, 이 세상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 확률 게임뿐임을 알았다.
자신을 돌아보았다. 슬퍼졌다. 나는 추했다.
진전은 없었다. 나는 두 번째 보는 수능을 준비했고, 이따금 그녀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쓰렸다. 시험은 잘 치지 못했다. 모든 것은 투입된 것에 정해진 대로 대응하는 확률 게임이다.
12월 말 송년회 겸 동창회가 열림을 알았다. 그녀의 공간으로 갔다. 변동이 생겼음을 알았다. 나는 5개월 만에 기적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그 뒤 한 달은 딱히 떠올리고 싶지 않다. 길게 쓰고 싶지 않다. 나는 전화했고, 실수했고, 그녀는 더 이상 받지 않았다. 지독하게 어설픈 구애였고 자연스럽게 실패했다. 그녀가 생각나면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더욱더 생각났다.
딱히 다른 감정은 없다. 그냥 대면한 채 분명한 어휘로 말하고 싶었다. 그리하지 못했음을 지금까지 아쉬워할 따름이다. 6개월이 지났다. 핸드폰은 정확히 171일째라고 차갑게 말하고 있다.
나는 애초에 이 글이 두 페이지를 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